2014년 4월 7일 월요일

그리스인 조르바

문이 열렸다. 바다 소리가 다시 카페로 쏟아져 들어왔다. 손발이 얼고 있었다. 나는 구석으로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는 외투로 몸을 감쌌다. 나는 그 순간의 행복을 음미했다.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 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해가 오른 하늘은 맑았다. 나는 암초 사이에 앉은 갈매기처럼 바위틈에 앉아 오래 바다를 응시했다. 내 육신은 기운이 넘쳐 내 말을 순종했다. 마음은 파도를 응시하다 한 줄기 파도가 되어 순순히 바다의 율동으로 잦아들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타키스 (이윤기 역)




새의 선물

나는 지금도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한다. 쥐를 똑바로 보면서 어금니에 고인 침 사이로 스테이크를 씹어넘기듯이. 그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나는 사랑이란 것은 기질과 필요가 계기를 만나서 생겨났다가 암시 혹은 자기최면에 의해 변형되고, 그리고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게 사랑이다.   


어쩌면 이모의 내면에는 수 많은 다른 모습들이 함께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들 중에 하나씩을 골라서 꺼내 쓰는 제어장치, 즉 이모의 인생을 편집하는 장치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면 이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일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새의 선물 - 은희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허기와 절망. 그런 감정들은 행복의 변방에서 서로를 알아본 순간 경계를 넘어 조용히 연대한다.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그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건 아닐 테지.


마리는 늘 낯선 시간을 원했고 낯선 곳으로 데려다주는 남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진정 낯선 곳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제 마리에게 남은 낯선 곳은 뒷걸음 질쳐서 발에 닿는 어떤 시간의 시원에 있는 것일까. 


안나가 요한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게 다였다. 안나가 요한에 대해 알고 싶은 건 그것보다 훨씬 많았다. 남쪽 도시에 가본 적이 있는지 언제나 조금씩 변하고 있는 네 계절의 바다를 좋아하는지 김종삼이란 시인을 아는지 진지하거나 소심하거나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 봄과 여름이 되면 어떤 색깔의 옷을 입을 것인지 어릴 때 털모자에 목도리를 두르고 부츠를 신는 북유럽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얼어붙은 운하를 따라 먼 세상으로 나가는 동화를 읽은 적이 있는지 해질녘 골목에서 울리는 자전거 경적 소리와 엄마의 심부름으로 두부를 사러 가는 비 오는 저녁의 냄새를 좋아하는지 따뜻한 코코아와 틀에서 막 꺼낸 국화빵을 좋아하는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을 창가에 서서 소리내어 읽어본 적이 있는지 화창한 봄날 목욕을 갔다 겨우내 입었던 내복을 벗어버리고 돌아오면서 키가 조금 컸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 늦가을 소풍에서 돌아온 날 혼자 집을 보다가 불현듯 아주 늙은 뒤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슬퍼진 적이 있는지, 그리고 요즈음의 꿈들,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적으려는데 볼펜이 안 나오고 건너편에서 그 사람이 탄 버스가 떠나려고 하는데 인파에 떠밀려 다가갈 수 없고 드디어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수돗물이 끊겨 세수를 할 수가 없고 또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웃음이 멈춰지지가 않아 겁에 잔뜩 질린 채로 미친 듯이 웃어대는 길고긴 꿈을 꾼 적이 있는지, 키가 작고 마른 여자애를 좋아한 적이 있는지 어제 입었던 블라우스와 오늘 입은 조끼 중에 어떤 게 더 어울리는지 말해줄 수 있는지 루시아의 말대로 커트머리에 핀을 꽂으면 촌스러운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갑과 하모니카 중에 무엇을 받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뭘 할건지.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요한은 루시아의 남자친구였다. 하느님이 잘못 포장한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 은희경 
2014.04.06


2013년 9월 1일 일요일